UPDATED. 2024-05-20 11:21 (월)
[지구를 떠도는 富] 술, 소금, 쇠
상태바
[지구를 떠도는 富] 술, 소금, 쇠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3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BC 207년 진나라가 통일제국 15년 만에 짧은 치세로 문을 내리고 초(楚) 항우(項羽)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한(漢) 유방은 새로운 통일국가로 세우고 치세를 열었다. 중화의 이념 아래 세운 나라다 보니 사방(四方)을 교화 대상이나 복속의 대상으로 보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원정으로 이어졌다.

개국 초기부터 원정이 이뤄졌지만 어디까지나 백성들 살림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제에 이르러 고조선과 서역에 이르는 무리한 원정이 계속되면서 국고가 바닥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진행되던 대외 원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한(漢) 무제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상홍양이 제안한 전매, 균수, 평준을 포함한 재정정책을 편다.

전매(專賣)는 삶에 꼭 필요한 물건, 즉 생필품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소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주정이나 담배는 대표적인 전매 상품이다. 

균수(均輸)는 국가가 조세로 거둔 각 지역의 산물을 무조건 수도로 가져오지 않고 해당 산물을 필요로 하는 다른 지방으로 운송해 판매하고 얻은 수익을 국가가 갖는 것이었다. 지역의 환경과 생산물이 다른 상황에서 잉여 물자를 필요한 곳으로 보내 산물이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정책이었다. 

평준(平準)은 균수법으로 지방에서 움직이던 물건의 일정량을 국가가 보관하고 있다가 산물이 부족해 가격이 오르면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고, 물량이 많아 가격이 떨어지면 일정량을 거둬 물건의 가격을 적절하게 유지시키는 정책이었다. 이는 환경이나 계절적인 요인으로 물건값이 오르내리면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아보려 했던 노력이다. 

바닥난 국고를 다시 채우려고 고심하던 무제는 상홍양의 제안에 솔깃했다. 무제는 전매 제안을 수용하고 술, 소금, 철에 대한 전매정책을 시행한다. 

이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염관은 27개, 군국에 36관, 철관은 40개, 군국에 48관을 설치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염관은 30~40여 곳, 철관은 40~50여 곳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매제가 유지되면서 소금과 철을 직접 관리한 덕분에 생산 원가에 비해 8~12배의 이익을 남길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지만 원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워낙 커 부족한 재정을 모두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BC 110년 국가의 재정과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균수와 평준법도 시행한다.  

이 모든 게 재화를 적절하게 배분하면서 지역마다 다른 물가를 안정시키고 국가 재정을 채우는 일거다득(一擧多得)의 효과를 노린 것이지만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서 상행위를 하였다는 점에서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비판한다. 다만 과도한 세금으로 백성의 생활을 어렵게 하지 않고 소수의 상인들이 취하는 이익을 국가가 가져가 더 큰 이익을 상인에게 돌려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국가가 했던 상행위로 얻은 이익은 서역을 개척하는데 사용됐다. 그로인해 안전이 확보된 상인들은 비단길(Silkroad, 실크로드)을 이용해 한나라 상품을 서역에 팔아 더 큰 이익을 남겼다. 대외원정을 통해서 한나라의 영향이 미치는 강역이 넓어지자 상인들의 활동영역도 넓어져 또 다른 돈벌이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전매는 단순히 국가가 장사를 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부를 살찌게 하는 재정 행위의 일부다. 춘추전국시대의 소국이었던 제나라를 강국으로 부상시킨 관중도 전매를 활용해 부국강병을 이뤄 제나라를 성장시켰다. 오늘날에는 전매라는 완곡한 표현과 국유화라는 거친 표현을 두고 상황에 따라 사용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에도 전매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